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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고구려 광개토대왕에 이어 왕위에 오른 장수왕(長壽王)은 동왕63년(475)에 국도(國都)를 평양으로 옮기고 남진정책을 추진하여 그 결과로 백제의 수도 한산을 점령하였다. 이로 인하여 백제는 부득이 수도를 웅진(熊津)으로 옮기게 되자 경기도의 전지역이 고구려의 영토가 되었다고 한다. 이에따라 고구려는 과천시의 전역과 군포시 안양시의 만안구 안양동, 동안구의 호계동 등을 「율목군(栗木郡-一云冬斯肹)」이라고 칭하였다.

이후 반도 동남부에서 세력을 키워오던 신라의 영토에 속하게 되는데 이는 신라가 백제와 공동으로 진흥왕(眞興王)12년(551)에 한강유역을 공격하여 상류지역을 점령하고 그로부터 2년후에는 공동작전으로 고구려를 공격한 백제를 축출하고 하류마저 점령하였다. 이후 3국이 정립되어 고려가 될 때까지 군포시(과천군 남면)은 신라의 영토로 존속되었다.


문무왕16년(676)에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신문왕(神文王)대에 이르러 행정구역을 정비하여 9주 5소경을 설치하였다. 9주아래 설치한 군과 현은 경덕왕(景德王)16년(757)에 일대 개혁이 이루어 졌는데 이때에 율목군(栗木郡)은 「율진군(栗津郡)」으로 개칭되었다. 이때의 율진군은 과천군, 군포시, 서울특별시의 용산구, 동작구의 일부와 서초구의 일부지역이었다고 한다.

신라 말기에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혼란하던시기에 지방의 호족이나 성주, 촌장 등에 의하여 후삼국이 성립되었으나 궁예를 축출하고 개성지방에서 세력을 규합한 왕건(王建)에 의하여 후삼국이 통일되고 고려 왕조가 설립되었다.

고려 태조23년(940)에 신라 경덕왕이 실시하여오던 주·군·현의 행정지명을 전면적으로 개정하게 되어 과천군「군포시」는 율진군에서 「과주군(果州郡)」으로 명칭이 바뀌었으며, 치관으로 감무관(監務官)을 두었다. 성종때에 지방행정 제도가운데 별호(別號)제를 사용하였는데 과주군의 별호제를 살펴보면 「고려사」지리지와 「세종실록」지리지에 기록된 내용은 다음과 같은 구절(句節)이 있다.

果川 本高句麗 栗木郡(一云 冬斯?) 新羅 景德王 改爲栗津郡 高麗初更 今名顯宗九年末屬後置監務 別號富安(成廟所定) 又號富林 有冠嶽山 「高麗史」권56. 지10. 지리1.)

果川縣 本高句麗栗木郡 新羅改爲 栗津郡高麗改爲果州 顯宗戊午屬廣州任內 後置監務 本朝太宗十三年癸巳 例改爲果川縣監 別號富林(淳化所定, 一作富安) (세종실록 권148. 지리 8.)

위에서 본바와 같이 과천(군포)에 별호는 「부안」또는 「부림」이라고 칭하였는데 이러한 별호는 고려 성종9년(990)부터 성종13년(994)에 정하여 졌다고 하며 고려에서는 그 당시 성종의 유교적 체제확립과 중국의 제도를 수용하여 진행중이였는데 이러한 배경에는 송나라의 문물제도를 바탕으로하여 지방의 특성을 별호로 제정하였을 것이라고 한다.

그 후 이성계에 의하여 조선이 건국되고 태조는 수도를 개경에서 한양으로 옮기고 정치체제를 정비하기 시작하여 체제와 제도가 완비되어 가자 태종2년(1402)에 경기좌도와 경기우도를 합하여 경기좌우도라 칭하였으며 이후 지방행정 구역은 점차변화를 보이다가 태종13년(1413)에 전면적인 개혁을 실시하였다. 당시 지방행정구역 개편으로 경기도는 1목 8도호부 6군 26현으로 개편되었는데 과주군은 「과천현」으로 개칭됨과 아울러 군에서 현으로 강등되었다. 주와 부와 군과 현과의 사이에는 등급이 있었는데 고려의 제도를 그대로본따서 지관(知官)인 행정관이 있는 자리에도 주(州)자를 부쳐 불렀는데 이러한 예를 들면 「仁州」,「槐州」니하는것이 바로 그것이고 현감으로 「州」자를 부쳐 부르는 고을은 「果州」,「衿州」가 바로 그런예라고 하겠다.

이와 같이 혼용되어 등급을 알수 없어 지관이나 현무관으로 행정관리가 된 고을의 그 주를 모두 산(山)자나 천(川)자를 바꾸게 된 것이다. 후에 산이니 천이니하는 호칭으로 부르게 되어 과천으로 개칭된 것이다.

태종13년에 개칭된 과천현은 이듬해 다시 금천현과 합병하여 금천현의 「금」자와 과천현의 「과」자를 합하여 「금과현」이라고 칭하였으나 불과 두어달만에 파하고 종전대로 복구하였다.

이어 세조2년(1456)에 다시 금천현과 병합하였지만 역시 얼마 안가서 파하고 예전의 명칭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이와같은 연유는 세조6년(1462) 5월 3일 이조(吏曹)에서 과천백성들의 상언에 의하여 이미 과천을 혁파하고 금천에 부쳤으나 과천현과 금천현의 거리가 30리이고 사객이 빈번하게 왕래하여 접대하기 어려우므로 치소를 종전대로 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에 따라 그대로 시행되었다고 한다.

세조이후 행정구역은 변동없이 지내오다가 일본의 침입에 의하여 지방제도가 일대 개편을 보게 되었다. 1895년 1월 7일 일본의 조정에 의하여 제정된 홍범(洪範)이 있었는데, 그 14조 중에는 지방관제를 개정하고 지방관리의 직권을 제정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로인하여 동년 5월 26일에 전문6조인 칙령 제98호 「지방제도개정에 관한건」을 공포하여 지방제도를 개혁하였다.

그리하여 8도제가 폐지되고 23부제가 실시되어 종래의 부, 목, 군, 현 등의 지방행정단위가 모두 군으로 통일되었으며 이에 따라 과천현이 과천군이 되었다. 그러나 23부제가 불합리하여 시행한지 1년 2개월만에 폐지되는 동시에 이듬해 8월 4일 칙령 제36호 「지방제도관제 봉급경비 개정의건」을 공포하여 13개도제가 시행되었다.

1910년 8월 조선을 강제로 합병한 일본은 동년 9월 30일 일본칙령 제 354호를 조선총독부 및 소속관서관제를 공포하여 36년간의 식민지통치를 실시하였다. 이듬해 4월 1일에는 경기도령 제3호에 따라 경성부, 군면제를 도입하는 등의 부분적인 도, 부, 군, 면 간의 경계변동이 있었다.

당시 조선총독부에 의하여 발행된 「구한국지방행정명칭일람」(1912년)에 의하면 관천군 남면의 행정구역은 <산본동, 당리, 용호동, 장간리, 부곡리, 괴곡리, 금정리, 당정리, 봉성리, 초막동>의 10개리이다. 1914년 3월 1일 시흥군 과천군 안산군등 3개군이 합병하여 시흥군이되고 과천군 남면 (군포시)은 시흥군 남면이 되었으며 <당리, 당정리, 금정리, 산본리, 부곡리>를 관할하게 되었다.

1914년 3월 1일 시흥군 남면이 된후 일제를 거쳐 건국후에도 행정구역의 변동이나 명칭에 대한 변경이 없이 지내오다가 1979년 4월 7일 대통령 제9409호(1979. 4. 7. 공포)에 의하여 동년 5월 1일 시흥군 남면이 시흥군 군포읍으로 승격하였다.

그 후 경제개발이 활발히 전개되고 산업시설이 입지가 유리한 군포지역으로 이전되면서 지역의 개발속도가 급진전되었다. 이에 수반하여 행정의 수요도 날로 증가하므로 이에 대한 효율적인 지역관리를 위하여 정부에서는 법률 제4050호(1988. 12. 31. 공포)에 의하여 1989년 1월 1일 시흥군을 분리하여 군포읍을 군포시로 의왕읍을 의왕시로 소래읍과 수암면, 군자면을 통합하여 시흥시로 승격시켰다. 이로 인하여 군포시는 기초지방자치단체로서의 지위를 갖추고 주민위주의 행정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관할하는 동으로는 군포시 동의 명칭 및 관할구역에 관한 조례 제22호(1989. 1. 1. 공포)에 의하여 군포시 당동 당정동 부곡동 산본동 금정동등 5개동을 관할하게 되었다. 또한 하부기관으로는 군포시 행정운영 동의설치 및 동장정수에 관한조례 제23호(1989. 1. 1.공포)에 의하여 당동1부를 군포1동으로 당동1부와 부곡동을 합하여 군포2동으로 당정동을 당정동으로 산본동을 분할하여 산본1동과 산본2동으로 금정동을 금정동으로하여 6개의 행정동을 설치하였다.

그후 신도시 건설로 인하여 산본동과 금정동 일부지역이 택지개발지구로 지정되고 주택이 건설되면서 입주민이 증가하고 행정수요가 증가하면서 이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하여 조례 제281호(1992. 4. 28. 공포)에 의하여 1992년 5월 1일 금정동을 분동하여 행정동인 재궁동을 설치하였다. 이로 인하여 행정동이 7개동이 되었다. 또한 조례 제295호(1993. 1. 6. 공포)에 의하여 시청사를 당동에서 금정동 844번지 현청사로 1992년 12월 2일 이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후 조례 제298호(1993. 1. 14. 공포)로 재궁동을 분동하여 1993년 1월 14일 오금동이 신설하여 행정동이 8개동이 되었다.
조례 제308호(1993. 6. 8. 공포)에 의하여 산본2동을 분할하여 1993년 6월 8일 수리동을 신설함으로 행정동이 9개동이 되었다.
또한 1년후에 조례 제347호(1994. 7. 19. 공포)로 수리동을 분할, 1994년 7월 19일 궁내동을 신설하여 행정동이 10개동이 되었다.

시로 승격한 후에 법정동은 변동없이 내려오다가 대통령령 제 14,434호(1994. 12. 26. 공포)에 의하여 행정구역의 일부조정으로 화성군 반월면 둔대리, 속달리, 대야미리, 도마교리 등 4개리가 군포시로 편입됨에 따라 조례 제363호(1994. 12. 29. 공포)에 의하여 군포시 둔대동, 속달동, 대야미동, 도마교동등 4개 법정동이 증설되어 총9개동이 되었으며 조례 제364호(1994. 12. 29. 공포)에 의하여 4개동의 행정을 수행할 행정동으로 대야미동이 설치되었다. 이로인하여 행정동이 11개 동으로 증가하였다.

그 후 입주시민의 증가로 동행정을 수행하는데 어려움이 많은 산본2동이 조례 제381호(1995. 2. 28. 공포)에 의하여 1995년 2월 28일 분할되어 광정동을 신설하였고, '99년에 당정동이 군포1동으로 통합 되어 지금은 행정동 11개 동이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참고자료:『시흥군지』,『과천향토사』,『군포시자치법규집』,『군포시 통계연보』